나오미 군지는 무사시노 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한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수학하며 동아시아 회화 전통과 현대 회화 언어를 함께 체득한 작가이다. 이후 한국 조각가 도흥록과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정착하여, 두 문화권의 감각이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작가는 일상의 주변 환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 안에 내재된 생과 죽음을 지속적으로 사유한다. 꽃, 나무, 숲, 동물과 같은 자연은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이지만, 이는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필멸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들이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하고 서정적인 화면을 이루지만, 그 이면에는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작동하는 긴장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꽃의 이미지는 나오미 군지 작업의 핵심적인 장치다.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도 번식이라는 생존의 목적을 향해 있으며,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작가는 이러한 생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생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의 회화는 이처럼 존재의 치열함과 사라짐의 불가항력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관람자로 하여금 자연을 낭만적 대상이 아닌 존재론적 조건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도흥록 작가의 소천 이후 작가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태도를 견지하며,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은 아름답다”는 인식을 표현해왔다. 이때 죽음은 삶을 무력화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더욱 강렬하게 체감하도록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 미술사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바니타스(Vanitas)’의 개념을 환기시키면서도, 동아시아적 자연관과 결합되어 독자적인 미감을 형성한다. 사라짐이 전제된 존재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순간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포착하며 화면 위에 응축시킨다. 그의 작업은 덧없음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지금 이 순간의 밀도와 감각을 극대화한다.
나오미 군지는 현재 영은미술관 레지던스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을 지속적으로 이어왔으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영은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전시를 진행해왔다. 또한 다수의 출판물에서 그림 작업과 일러스트 감독으로 참여하며 회화의 영역을 확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