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과 숯 등의 소재를 이용하여 풍경을 그리는 박영학은 풍경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비워내기를 통해 자연형태의 본질에 집중한다. 그의 그림은 익숙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곳곳에 여백을 둔 그의 작품을 보면 <단아한>이라는 일괄적 제목이 지어진 것이 이해가 되는데, 이는 비워내기에 집중하여 백자와 같은 단아한 한국의 풍경을 담고 싶은 작가의 의지이기도 하다. 간결해 보이는 작품은 이미지와는 달리, 제작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박영학은 장지 위에 하얀 석채를 입히고 말리는 작업을 15회 이상 하여 견고한 바탕을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도화지는 변하지 않는 순백의 색이 입혀지고, 돌가루는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종이는 더욱 단단해진다. 그 위에 건식 재료인 연필과 목탄, 숯과 같은 재료로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숯 또한 그의 손을 통해 일일이 깨어져 각각의 결과 면의 모양에 따라 배치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자연 재료 사용을 통해 작품을 다시 자연으로 환원시키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품고 있다.
박영학은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인공물이나 경물들을 지워내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여러 색을 사용하기보다, 흑과 백의 대비에 집중하는데, 하얀 돌가루의 거친 표면 위에 목탄과 면봉을 이용, 동양화 농담의 깊이를 만든다. 화폭 위의 목탄은 강한 선으로 나타나고, 산릉선, 계곡, 바위, 나무, 고랑 등으로 그려진다. 이때 선들은 유연하게 화면을 가로지르며 감상자의 시선을 확장, 또는 집중시킨다. 작가의 손에서 세심하게 분할 된 숯은 면을 이루어 바다, 섬, 강 등으로 표현된다. 세심하고 작은 선은 연필로 그려지고 나무,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가 된다.
작품은 최소화된 재료와 방식으로 채워지기보다 비워진 듯 보이고, 이러한 풍경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풍경을 보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은 보는 이들이 각자의 상상력으로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이러한 박영학의 작품은 “모던 산수화”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한국 산수화의 정서와 새로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박영학은 화지 위에 거대한 자연을 옮겨오기보다, 사유의 공간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그려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경물의 재현이 아닌, 형상의 부재를 통한 명상의 장이다. 작가는 자연을 그리면서 느꼈던 좋은 기운과 치유를 그림을 통해 관람객들도 함께 느끼길 희망한다.
박영학 작가는 청주대학교, 동 대학원에서 회화학과를 졸업하였다. 2015년 대전 DTC 갤러리를 시작으로 갤러리 도스, 박영덕 화랑, 갤러리 마노 등에서 2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KIAF, 대구아트페어, 예술의전당 등에서 다수의 페어와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청주대학교 등 유수의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는 영은미술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치며 작가 생활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