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현(1971~)은 한국인이며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보자기에 주목한다. 근대화, 서구화가 되면서 가방의 등장으로 사라져 가는 보자기는 과거에는 다용도로 쓰이던 필수 불가결한 물건이었다. 작가는 어릴 때 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들고 오신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보며 설레였던 마음을 기억한다. 그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일까 상상하며 보자기 푸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보자기 안에는 참기름과 음식물, 옷과 같은 생필품, 또는 책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닭이 들어 있기도 했다. 때로는 이불과 같은 침구를 싸기도 했던 보자기는 어떠한 외형을 가진 물건이던 조건없이 수용하며 넉넉하게 품어준다. 이런 보자기의 포근한 정서는 한국인의 따뜻한 정과 더불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킨다.
또한 복이나 수와 같은 글자를 수 놓아 행복과 장수를 비는 소망을 담기도 하였으며 십장생, 용, 봉황과 같은 동물을 수놓아 품위와 격을 드러내기도 했던 보자기는 정성과 사랑이 담긴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김시현 작가는 한국 전통 문화가 가진 화려함의 정점에 있는 궁중 예술 속 동물이나 꽃을 모티브로 가져와 한국적 미감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한국 예술의 정신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그의 보자기 작품은 소재가 가진 내러티브 뿐 아니라 방법론적 관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극한의 디테일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극 사실주의로 표현된 보자기는 실제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지만, 푸른 하늘, 숲 속, 샹들리에 밑 등 보자기가 놓여있는 배경은 실제가 아닌, 상상 속의 공간이다. 또한 비녀, 노리개, 꽃과 같은 장식을 차용해 보자기를 장식하는 행위는 작품 속 보자기가 실제 보자기가 아니라 작가의 창조물 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엿 볼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서양 미술의 전통적인 매체인 오일페인팅의 화려한 발색을 통해 구현해내어, 스포트라이트를 밝힌 듯한 강렬한 빛이 머무르는 극적인 화면을 조성하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보자기 작업은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머물지 않고 동양의 정신성을 서구적 조형 언어로 실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The Precious Message’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보는 이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로 여운을 준다.
김시현은 인천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도에 시작해 국내외에서 36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350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초대되었다.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초대되는 것을 포함, 3차례에 걸쳐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 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양평 군립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그 외 주일 대사관, 중동 예멘 대사관을 포함한 해외대사관에서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려 있다. ARTKIST 레지던시 제1기(2013~2014)를 지냈고, 2020년 현재 전업 작가로서 세종대학교, 백석예술 대학교에도 출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