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의 불길을 거쳐야만 고유의 차갑고 단단한 형상으로 발현되며, 한편으로는 연약하고 유연하다는 유리의 양면성은 유충목 작가(1977~)를 사로잡았다. 대학 졸업 전 미국 코닝사가 주관한 대회에서 세계 신진 유리 작가 100인에 선정 된 후, 같은 해 세계적인 미국 유리 작가 데일 치훌리가 설립한 Pilchuck Glass School 에서 장학금을 받고 워크숍에 참여하며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유리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리에 대한 매체적 실험 위에 위트가 녹아 든 작업을 선보였던 초기의 “Series of Zipper”, 한국을 떠나 있던 시기, 다양한 인종 간의 미묘한 갈등과 그 속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The Skin” 시리즈를 지나 “Series of Mutation”으로 유리에 조형성을 담아내며 시각 언어의 한계를 확장하는 작업을 해오던 유충목 작가는 작년 작고하신 고 김창열 화백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담은 “Formation” 시리즈로 호평 받고 있다.
특히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이라는 원형적 에너지가 응집된 물방울을 유리로 구현해내어, 성스러운 생명력을 담은 영롱함을 극대화 시켰다. 이는 보는 이에게 생명의 탄생과 순환에 대해 상기시키며, 찬란한 일루전의 순간을 선사한다. 더불어, 기하학적 선과 면의 비례 등을 통해 발현된 서구적 조형성에 한국 전통 미술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오방색으로 캔버스 바탕을 입혀 현대적인 감각과 한국적인 미감이 접목된 절묘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비춰보는 것이며,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아름다움과 그 근원에 대한 고민들을 형상화 하려는 탐구의 과정이다.
유리 물방울의 영롱함은 차원의 개념을 잠시 잊게 만들며 과거와 현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시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물방울은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물방울은 공기 중 수분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가 되며 수 많은 생명을 탄생시키 듯이, 그의 모든 경험이 쌓여 진정한 자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유리는 그가 지금까지 작가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양분이며 정체성이기도 하다.
유충목 작가는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에서 유리를 전공하였으며 University of Sunderland(Sunderland, UK)에서 유리 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나노IT디자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는 뉴욕의 Carlson Glass Works 에서 수석 유리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되어 9년 간 근무하였으며 영국 서더랜드의 유리공예 센터(National Glass Centre, Sunderland, UK) 에서 유리 디자이너로 일했다. 한국을 비롯, 미국. 영국 등지에서 수 차례의 초대전을 선보였으며 그의 작품은 가나아트센터, 유한양행을 비롯, 미국 글로벌 아트 에비뉴 갤러리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가나 아뜰리에 입주 작가이다.